수제화 산업의 메카 성수동,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중구 의주로 2가 염천교 일대 구두점들의 밀집이 시작이다. 1925년 경성역(현 서울역)이 생기면서 잡화상과 함께
구두수선점이 생겨났다. 해방 후 미군들이 중고 전투화(워커)로 훌륭한 신사화를 만드는 가게가 문을 열면서
번창하였다.

명동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였고, 명동의 싸롱화와 양복점은 연예인, 재벌들의 에피소드로
유명세를 탔다. 1970년대 상공부에서는 세계 우수 상품 시작품 경연 대회를 개최했다. 명품을 따라잡기 위해 장인들로
하여금 외국의 제품을 유사하게 만들어 구두 및 봉제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에펠, 신일, 알프스, 금강제화 등 싸롱화집이 번성하였다.

명동이 공장과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싸롱화의 중심지였다면 서울 시내에서 구두공장 밀집 지역은 금호동이다.
1960년대 말 금강제화 생산공장이 금호동 지역에 들어서면서 하청 공장들이 자리 잡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강제화 생산본부가 부평으로 옮겨 구두 관련 공장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성수동에 구두공장들이 몰려든 이유는
금강제화 본사가 있으며 성남에 있는 에스콰이어, 옐칸토 생산공장과도 가까워서였다. 성수동에 구두공장들이
밀집되고, 가죽과 악세사리, 부자재 등 구두 재료 업체들도 늘어났다. 현재 성수동 수제화를 지역특화사업으로
지정하여 문화 · 관광의 상징 사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성수 수제화가 소중한 이유?
산업 발전 가능성
취향에 따른 개별화된 소비행태로 다품종 소량생산, 공방 형식 구두 제조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도시화 과정에서 형성된 자연발생적 클러스터로, 재료 · 디자인 · 제작 등 전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디자인, 기술 개발 등을 통한 고부가가치화와 혁신 인재 결합 시 창조경제로 발전이 가능하다. 산업과 지역의 발전이 지속될 경우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다.
서울의 유산, 지속 발전의 근간
성수 수제화는 그간 서울의 도시계획과 산업화 과정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서울의 대표 제조업이다. 빨간 벽돌 제조공장, 연무장길 자전거 탄 상인 풍경은 서울의 유산이며 문화 산업 다양성은 도시의 창조성과 지속 가능성의 근간으로 발전적 계승이 필요하다.